우리가 마시는 물은 몇 년 전에 내린 비일까?

 방금 마신 물 한 모금이 언제 하늘에서 내린 비였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어제? 지난달? 정답은 물마다 다릅니다. 수돗물이라면 몇 주 전에 내린 비일 수 있지만, 편의점에서 산 생수 한 병이라면 당신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에 내린 비일 수 있습니다. 물에도 나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1. 물에도 나이가 있다:“체류 시간”의 과학

수문학자들은 물이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체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물순환은 모든 곳에서 같은 속도로 돌지 않습니다. 하늘의 수증기는 열흘 안팎이면 비가 되어 내려오고, 강물은 며칠에서 몇 주면 바다에 도착합니다. 호수의 물은 수년에서 수십 년을 머무르고,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는 수십 년에서 수십만 년까지 머무릅니다.

‘물의 나이’란 비나 눈으로 내려 땅에 스며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하수를 마신다는 것은, 과거의 하늘에서 내린 비를 마시는 일입니다.

2. 빗물은 어떻게 지하수가 될까

땅에 떨어진 빗물의 여정은 흙 표면에서 시작됩니다. 납엽이 덮이고, 생물들이 통로를 뚫어놓은 건 강한 흙은 빗물을 빠르게 빨아들입니다. 흙을 통과한 물은 중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가, 암석과 모래의 틈이 물로 가득 찬 층에 도착합니다. 이것이 대수층입니다.

지하수는 땅속을 흐르는 강이 아니라, 스펀지처럼 틈을 채우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물입니다. 그 속도는 보통 하루에 몇 센티미터에서 몇 미터 수준. 걸어서 10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수년이 걸릴수도 있는 셈입니다. 이 느림이 지하수의 본질입니다.

3. 물의 나이는 어떻게 재는 걸까:물속에 남은 시대의 지문

물이 땅속에 들어간 순간부터 시간을 세는 시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 분자만 들여다봐서는 그 물이 작년에 스며든 것인지, 수만 년 전에 스며든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물속에 함께 들어온 물질과 동위원소를 일종의 사간표로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중수소입니다. 삼중수소는 자연에도 소량 존재하지만, 1950~60년대 대기권 핵실험으로 대기 중 농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당시 빗물에 섞여 땅속으로 들어간 삼중수소의 흔적을 조사하면 비교적 최근에 ㅂ충된 지하수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지 추정할 수 있스빈다. 다만 지하수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스며든 물이 섞일 수 있기 때문에,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이유만으로 그 물 전체가 특정 연도에 내린 비라고 단정할 수 는 없습니다. 

시간의 범위가 더 길어지면 다른 시계가 필요합니다. 탄소-14는 주로 물에 녹아 있는 무기탄소를 분석해 수천 년에서 수만 년 규모의 지하수를 연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일반적으로 약 1,000~33만 년 된 지하수의 연대를 조사하는 데 탄소-14가 널리 이용된다고 설명하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물에는 크립톤-81이라는 희귀 방사성 동위원소가 등장합니다. 반감기가 약 22만 9천 년이어서 수만 년에서 100만 년이 넘는 오래된 지하수의 체류시간을 조사하는 데 적합합니다. 최근에는 약 만~150만 년 범위의 물과 얼음을 조사할 수 있는 연대측정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게 서로 다른 ‘시계’를 이용해 세계 곳곳의 지하수를 조사하자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발밑에서 끌어 올리느 물 가운데에는 몇십 년 전에 내린 비뿐 아니라, 인류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땅속으로 들어간 물도 상당량 섞여 있었습니다.

4. 세계의 지하수는 생각보다 훨씬 늙었다

2016년 Nature Geoscience에 실린 연구는 지구 대륙 지각 상부 약 2km에 저장된 지하수의 총량을 총량을 2,260 km³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이 ‘현대 지하수’라고 정의한, 최근 50년 이내에 보충된 지하수는 전체의 6% 미만으로 분석됐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하에 거대한 물 저장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물이 모두 해마다 비가 내리면 금세 다시 채워지는 것은 다시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하수는 강물처럼 빠르게 흐르는 물도 있지만, 암석과 퇴적층 사이를 매우 느리게 이동하며 수백 년, 수천 년 이상 머무는 물도 있습니다.

2017년에는 연구진이 전 세계 6,455개 우물에서 얻은 탄소 동위원소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각 상부 1km에 저장된 지하수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약 1만 2천 년 전보다 오래된 ‘화석 지하수’였고 특히 깊이 250m를 넘는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은 오래된 지하수가 우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반전도 있었습니다. 오래ㄴ된 지하수가 우세한 우물의 약 절반에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들어온 물의 흔적인 삼중수소도 발견됐습니다. 오랜된 물과 새로운 물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수층과 우물 안에서 섞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하 깊은 곳의 오랜된 물도 지표에서 유입되는 오염물질로부터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더 극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이집트 사하라 사막 아래의 누비아 사암 대수틍에서는 크립통-81을 이용해 약 20만~100만 년 전에 땅속으로 들어간 지하수가 확인됐습니다. 우리가 오늘 끌어 올리는 물 가운데 일부는 현생 인류의 아주 먼 과거에 내린 비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지하수가 모두 영원히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충전되는 속도와 우리가 꺼내 쓰는 속도입니다. 특히 건조 지역의 오래된 대수층은 오늘날의 기후 조건에서는 보충 속도가 매우 느려, 인간의 생활 시간척도에서는 사실상 비재생 자원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화석 지하수를 사용하는 일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쓰는 것보다 오래전에 만들어 둔 저축에서 원금을 꺼내 쓰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통장에 큰돈이 들어 있다고 해서 계속 같은 속도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다시 채워지는지를 함께 알아야 합니다.

지하수의 나이를 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5. 한국의 물은 몇 살일까:삼다수의 31년

그렇다면 우리가 마시는 물은 몇 살일까요? 강물과 댐에 기대는 수돗물은 비교적 젊은 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주도입니다. 2001년 제주도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함께 조사했을 때 제주 지하수의 평균 나이는 약 22년, 삼다수 취수원의 물은 약 18년 측정됐습니다. 그런데 고려대 연구팀과 제주개발공사가 7년간 모니터링과 다중 추적자 기법으로 재측정한 결과, 삼다수의 생성 연령은 평균 31년으로 재산정되어 2025년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하이드롤로지’에 게재됐습니다.

오늘 편의점에서 산 삼다수 한 병은 1990년대에 한라산 1,450m 고지대에 내린 비가 화산암반층을 30여 년 통과한 물이라는 뜻입니다. 제주에는 한 해 약40억 톤의 비가 내리고 그중 1억 톤가량이 지하수로 스며듭니다. 이 긴 여정이 천연 정수의 시간이지만, 보면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땅 위에서 오염된 물은 30년 뒤 누군가의 컵에 도달합니다. 지하수 관리가 한 세대를 내다보는 일인 이유입니다. 

6. 물의 시간을 지키는 방법

지하수는 눈에 보이지 않아, 문제가 커진 뒤에야 드러납니다. 방향은 분명합니다. 물이 채워지는 자연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할 일

  • 대수층이 채워지는 속도 안에서 취수량을 관리하기
  • 빗물이 스며드는 함양 지역(숲.습지.투수성 땅)을 개발에서 보호하기
  • 빗물 침투 시설과 인공 함양으로 도시의 빗물을 땅으로 돌려보내기

일상에서 할 일

  • 마당.주차장의 불투수 포장을 줄이고 빗물이 스며드는 땅 남겨두기
  • 지하수 오염원이 되는 폐수.농약.기름을 함부로 버리지 않기
  • 물을 아껴 쓰기:특히 지하수에 기대는 지역이라면 더욱
다음에 물 한 잔을 마실 때, 이 물이 몇 년 전 하늘에서 출발했을지 상상해 보세요. 어떤 물은 지난 주의 비이고, 어떤 물은 당신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물을 아낀다는 거은 결국, 수십 년에 걸쳐 땅속을 여행해 온 시간을 아끼는 일입니다.
참고 자료

  • Glesson, T. Et al.(2016). The global volume and distribution of modern groundwater. Nature Geoscience.
  • Jasechko, S. et al. (2017). Global aquifers dominated by fossil groundwaters but wells vulnerable to modern contamination. Nature Geoscience.
  • Sturchio, N.C. Et al. (2004). One million year old groundwater in the Sahara revealed by kypton-81 and chlorine-36.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 제주삼다수 공식 자료(지층 구조.함양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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